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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테러리즘
제임스 루이스 엮음 / 하홍규 옮김
한울아카데미 / 2020-06-10 발행 / 신국판 / 양장 / 352면 / 48,000원
ISBN 978-89-460-7226-8 93300
분야 : 정치·국제관계, 종교학·기독교
 
  “종교가 테러리즘을 유발하는가?”
현시대 종교와 테러리즘에 대한 16개의 다양한 시선과 접근!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가 납치한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한 이후 테러리즘과 종교의 관계는 특히 격렬하게 논의되어 왔지만,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답을 찾지는 못한 듯하다.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볼 때, 어떤 이들은 종교가 당연히 테러리즘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가 왜곡되어 사용되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테러리즘에 있어서 종교는 그 자체가 문제일까, 아니면 피해자일까?’
이 책은 폭넓게 다양한(때로는 상호배타적인 경계에 있기도 한) 접근과 이론적 지향을 가진 연구자들의 시선을 통해 종교와 테러리즘에 대한 다방면의 이해를 보여준다. 16개의 글은 이론적 입장도 다르고, 이슬람, 테러, 순교, 희생 제의, 민족 해방 운동, 파룬궁 순교 등 분석하는 사례도 다양하다. 독자는 종교, 특히 종교의 비합리적 광신이 테러리즘을 유발한다는 식의 단선적인 인과 분석과 그로 인한 “무슬림은 테러리스트이다”라는 식의 낙인찍기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아니 오히려 얼마나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 책 소개

종교는 그 자체로 문제이거나 적어도 문제적인가?
오랫동안 일방적이고 피상적으로 다뤄져온 질문들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면적인 접근!

모든 종교 전통의 역사는 피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다수의 종교에 폭력의 상징과 언어가 가득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대 세계에서 많은 극적인 테러리즘 행위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수행되어 왔지만, 테러리즘의 종교적 차원은 대개는 피상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어떤 테러리스트의 공격자들을 비합리적인 종교나 심지어 악마적 동기들에 의해 움직이는 지각없는 광신도들로 일축해 버리거나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과 그 이면에 있다고 여겨지는 종교적 확신 이면에 있는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더욱 심층적인 접근에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책에는 현대 종교와 테러리즘 이해에 심층적인 접근을 돕는 16개의 글이 실려 있다. 학자들의 포지션과 접근법은 다양하다. 이 책은 의도적으로 폭넓게 다양한(때로는 상호배타적인 경계에 있기도 한) 접근과 이론적 지향들을 가진 연구자들을 선택하여 함께 모았다. 종교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운다 해도 특정 종교 전통과 결부된 테러리스트들의 행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종교에 독점적인 역할을 부여하지는 않는 학자도 있고(제1장, 마크 주어겐스마이어), 비종교적 폭력과 구별된 범주에 넣을 수 있는 명백하게 종교적인 폭력은 없다고 강하게 역설하는 학자도 있으며(제2장, 윌리엄 캐버노), 테러리스트의 행위를 이해하는 데 인과적 요소로서 종교성을 완전히 제외하는 접근들에 반대하여 논의하는 학자도 있다(제3장, 론 도슨). 개인, 국가 사회, 비국가 행위자, 개별 종교나 종교 집단 등 저자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층위도 다양하다.
다양한 측면과 층위에서 종교와 테러리즘의 관계와 그 역사, 현상, 그리고 연구 관점들을 탐색하는 이 책은 특히 9·11 이후 20년 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강하게 결부되어 온 종교와 테러리즘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들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기 위한 도전적인 연구와 관점들!

흔히 종교에 반감을 갖고 있는 세속주의 비평가들은 종교의 핵심에 있는 비합리적 광신이 테러리즘의 주된 원인이라고 묘사하는 반면, 정치학에 조예가 있는 분석가들은 종교적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범죄학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을 범죄자로 보고 연구하고, 심리학자들은 테러리스트의 마음에 정신병리학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최근에서야 종교학에서 비롯한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여기서도 유일한 종교학적 접근법이란 없다.
이 책은 현대 종교와 테러리즘 관계에서 종교와 종교성 자체에 대한 탐구의 가치를 새롭게 환기하면서도 이를 넘어 문화 연구, 인지심리학, 역사사회학 등 저자들의 관심 분야와 전공에 따라 다양한 가설과 비판을 제기한다. 저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며 때로 충돌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일치하거나 비슷한 조류를 형성하기도 한다. 책의 저자들은 정도는 달라도 테러리즘 역시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견해를, 그리고 종교 역시 초역사적인 힘이라기보다는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견해를 공유한다. 그리고 흔히 많은 분석가들이 저지르곤 하는, 테러리즘의 의미를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민국가 특히 서구 국가와 그 연합 국가들에 대해 행하는 폭력적인 정치 행위로 한정하는 잘못을 피하고자 한다.
이 책은 종교와 테러리즘에 대해 우리가 흔히 범하곤 하는 편견과 오류들을 바로잡고,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성과 테러리즘의 내적 메커니즘에 대한 고찰!

종교와 테러리즘의 내적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이 빈곤한 상태에서 이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종교성과 테러리즘의 내적 메커니즘을 새롭게 조명하고 다각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게 돕는 다수의 글을 싣고 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성스러운 대의에 헌신하고 자살 테러리즘까지도 불사하는 ‘헌신된 행위자’들의 심리적·종교적 경험을 조사하고(제5장, 스콧 애트런), 희생 메커니즘에 대한 논쟁적인 학설을 펼쳐온 르네 지라르의 (후기) 사상이 종교와 테러리즘에 접근하는 방식을 살펴보며(제6장, 에스펜 달), 경제학적 접근을 취하는 합리적 선택 이론/모델이 어떻게 이 문제에 적용되어 왔는지를 논의하기도 하고(제7장, 스티븐 네메스), 자살에 대한 에밀 뒤르켐의 고전 사회학 사상을 여러 연구자들이 어떻게 현대의 자살 폭탄 테러에 적용하려 해왔는지 요약하기도 한다(제8장, 로렌츠 그라이틀). 신화와 의례에 대한 미르체아 엘리아데 등의 오래된 접근들을 ‘모방’ 연구에 의해 검토 및 수정함으로써 일부 급진적인 종교 하위문화들(예: 데이비드 코레시의 다윗교)의 선택들을 해석하는 글도 있고(제9장, 제임스 루이스), 오사마 빈라덴의 성명들에 문화적으로 부여된 의미를 섬세하게 파헤치거나(제11장, 피터르 나닝하), 이슬람 국가(IS)가 상징 폭력의 극적인 시연을 창출하기 위해 어떻게 무슬림 전통들을 끌어들였는지에 관해 미묘한 분석을 제공하기도 한다(제12장, 피터르 나닝하).

다양한 사회와 문화에서 종교와 테러리즘이 그려져 온 방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

또한 이 책은 서구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와 문화에서 종교와 테러리즘이 그려져 온 일방적이고 교묘한 방식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4장(톰 밀스, 데이비드 밀러)은 소련을 테러리즘 배후의 추진 세력으로 묘사하던 서구의 ‘테러리즘 연구’가 이른바 ‘새로운 테러리즘’에서 어떻게 소련의 자리를 종교로 대체했는지 보여준다. 또한 테러리즘 연구에 관련된 다양한 개인과 단체들(예: 싱크탱크)의 정치적 편향과 그러한 지향성이 어떻게 이슬람을 테러의 원천으로 낙인찍는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 제10장(페터르 스할크)은 일부의 인식과는 달리 스리랑카의 타밀 호랑이 운동에서 종교는 관심사인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이 어떻게 비종교적·정치적·전투적 순교론을 가르침으로써 그의 핵심 그룹을 무장 투쟁으로 이끌었는지 보여준다. 제13장(페르-에릭 닐손)은 풍자 잡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IS의 테러에 프랑스가 보인 국가적 반응과 그 반응에 코드화되어 있는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탐구한다. 제14장(메림 아이트쿨로바)은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IS 테러로 의혹을 받은 사건을 어떻게 정부 지지를 위한 결집의 방법으로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군사 원조를 요청하는 구실로도 이용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제15장(크리스토퍼 하트니)은 <24>, <아메리칸 스나이퍼>, <제로 다크 서티> 같은 미국 드라마와 할리우드 영화에 묘사된 테러리즘의 의미를 분석한다. 제16장(제임스 루이스, 니콜 다미코)은 1999년 중국에서 금지된 파룬궁 문제를 조사하는데, 파룬궁 지도자들이 추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박해와 순교를 추구하도록 요구한 가르침과 교리에 대한 분석은 중국에서 그들이 받은 박해를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 출판사 서평

낙인찍기와 회피를 넘어서
종교와 테러리즘의 관계를 통찰하기 위한 16개의 논고!

테러리즘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한 이후 테러리즘과 종교의 관계는 특히 격렬하게 논의되어 왔지만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에 제대로 답해지진 못한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신의) 종교적 믿음이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종교는 종속 변수일 뿐이거나 순수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본질적인 메시지가 왜곡되어 사용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종교는 그 자체로 절대주의적이고, 분열을 초래하며, 몰합리적이고, 심지어 이데올로기와 같이 독성 있는 모든 것이 ‘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종교는 그 자체가 문제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 아니, 이런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인 질문을 넘어서는 질문은 가능한가?
이 책은 종교와 테러리즘에 대한 포괄적 이론을 제시하는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차고 넘치는 미디어 비평가, 관리, 학자들에 의해 앵무새처럼 반복되고 재생산되어 온 테러리즘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 이 책은 우리를 제한된 이해로 이끄는 잘못된 전제들을 밝히고 우리가 그동안 가져왔던 가정과 묘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신앙의 형이상학적 차원부터 고전적인 사회 이론, 최신의 문화·종교·사회 연구들, ‘테러리스트들’을 둘러싼 종교적·심리적·사회적 기제에 이르기까지 정밀한 조사를 수행하는 이 책의 각 장은 나름의 설득력과 통찰력을 지니며, 이 문제에 대해 아마도 하나의 단순한 답은 없다고 말하는 것만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임을,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종교적으로 어떻게 ‘타자’를 구성해 왔는지를 이해하게 도울 것이다.
테러리즘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서 배경으로 밀려나거나 무시되곤 하는 종교적·시민적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에도 균형 있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평화와 안정을 증진할 수 있는 종교적·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의외의 단초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우주적 전쟁의 관념은 이 모든 사례에서 놀랍도록 일관된 특징이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스러운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이라고 여긴다. 그러한 전쟁 관념들은 생명보다 더 큰 것이기에 나는 그것들을 ‘우주적’이라고 부른다. 그 관념들은 전설적인 과거의 위대한 전투들을 소환하고, 이를 선과 악의 형이상학적 갈등에 연결시킨다. 우주적 전쟁의 관념들은 친밀하게 개인적이지만, 또한 사회적인 수준으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관념들은 인간 경험을 초월한다. 흔히 활동가들은 히브리 성서(구약)의 전투, 힌두교와 불교의 서사, 이슬람의 지하드 관념과 같은 모든 종교 전통에서 발견되는 성스러운 전쟁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특히 종교적 폭력을 흉포하고 가차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폭력 행사자들이 그러한 신성한 투쟁―우주적 전쟁―이라는 종교적 이미지를 세속적인 정치적 전투의 복무에 사용하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종교적 테러 행위들은 정치 전략의 전술로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한 영적 대립을 유발하는 데 기여한다. _34쪽: 1장 “종교가 테러리즘을 유발하는가?” 中

반근대주의, 반미국주의, 반세계화의 종교적 표현에 관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갈등의 부분이 아니었던 새로운 측면들을 갈등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우선 종교는 갈등을 개인화한다. 종교는 오로지 사회적 보상만이 있었을 갈등에서 투쟁하는 자들에게 종교적 공훈(功勳), 구원, 천상의 호화로움 같은 개인적 보상들을 제공한다. 종교는 또한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슈들로는 동원되지 않았을 수많은 지지자들을 포용하는 사회적 동원의 수단을 제공한다. 많은 경우에, 종교는 지도력과 지지의 유형들을 활용할 수 있는, 지역 교회와 모스크, 사원 그리고 종교 결사체의 조직적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종교는 정치적 충돌에 대해 도덕적 정당화라는 합법성을 제공한다. 더 중요하게, 종교는 폭력에 대한 정당화를 제공하여 국가만이 독점한 도덕적으로 승인된 살인에 도전한다. 국가의 권위는 항상 경찰권, 처벌 그리고 무장 방어에 있어서 유혈 폭력의 사용을 통해 권력을 집행하는 국가에 대한 사회적 인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경구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종교는 국가 외에 폭력에 도덕적 승인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실체이며, (적어도) 그래서 본질적으로 또 잠재적으로 혁명적일 가능성이 있다. _35쪽: 1장 “종교가 테러리즘을 유발하는가?” 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고려해 보자. 합리적인 비용&#8209;편익 분석에 따른다면 팔레스타인은 1967년 이전 자신들이 거주했던 다른 땅들을 포함하는 독립 국가에 대한 대가로 예루살렘에 대한 주권이나 이스라엘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피난민들의 요구를 포기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포기할 것보다 더 많은 주권과 더 많은 땅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과 유럽이 모든 팔레스타인 가족에게 장기간 상당한 경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그 거래를 순조롭게 한다면, 그들은 그러한 합의를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대신에 우리는 재정적 회유 수단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그 거래에 더 반대하게 하고, 자살 폭탄을 포함하여 그것에 반대하는 폭력을 더 지지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도 이스라엘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나 (사실상 이스라엘에게 피난민들을 흡수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 아래)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돌아올 권리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런데 만약 그 거래가 추가적인 장기 재정 지원이나 평화롭고 풍족한 삶의 보장을 포함했다면 이스라엘인들은 훨씬 더 반대했을 것이다. _105쪽: 5장 “전쟁, 혁명 그리고 테러리즘에서 헌신된 행위자의 역할” 中

실제로, 우리는 가족과의 감정적 유대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명백하게 드러내지만 그러한 중요한 관심사들을 기꺼이 희생할 마음을 보이는 헌신된 행위자들을 자주 만났다. 예를 들어, 한 쿠르드족 전사는 IS가 자기 마을을 공격할 때, IS 군대가 마을을 수중에 넣기 전에 마을로 들어가 가족을 빼내와야 할지, 아니면 가족은 제쳐두고 먼저 전선 안정화에 힘써 IS의 전진을 막아야 할지 (비극적) 선택을 해야 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 선택은 깨어 있는 매순간 그를 괴롭혔다고 했다. 이 짧은 대화 가운데 그는 쿠르디어티를 위한 싸움 때문에 가족의 의무를 저버려야 하는 고통을 표현했다. _114쪽: 5장 “전쟁, 혁명 그리고 테러리즘에서 헌신된 행위자의 역할” 中

‘사냥자의 사냥’의 커다란 매력은 그것이 사냥자들에게 폭력을 영속화한 것에 대한 그들 자신의 책임을 고려해야 할 의무를 면제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근대 세계에서 강한 장악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그 논리가 희생자의 절대적 지위를 빌미로 삼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부분적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밖으로 돌리는 데 길을 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희생양에서와 같이, 그것은 폭력의 진정한 얼굴을 위장하며 그것을 자기의(自己義)로 감싸고 있다. 심지어 비판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희생자의 권리가 절대적인 한, 그것은 새로운 경쟁의 소용돌이로 이어질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희생양에 대한 근심 자체가 모방적 경쟁 관계의 목표가 된 것이다.” 여기서 지라르가 ‘최고 희생자 보호 장치(super-victimary machine)’라고 부른 그 원동력은 복수와 돌아오는 희생 메커니즘의 기이한 귀환이다 _134~135쪽: 6장 “지라르, 종말과 테러리즘에 대하여” 中

FBI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은 후, 아널드와 테이버는 계시록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제기하기 위해, 다윗교도들이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하려고 준비했다. 그 대안적 해석은 공동체의 남아 있는 구성원들은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요한계시록 10장의 주제인 ‘작은 책’에 대해 논의했다. 아널드와 테이버는 코레시가 자신을 그 텍스트에서 말하는 대로 “그 종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주신”(요한계시록 10장 7절) ‘신의 신비’를 담은 책을 받은 인물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4월 14일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가고 2주 후 그리고 FBI 공격 5일 전에, 코레시는 기다림의 기간이 지났다고 선언했다. 신은 그에게 일곱 봉인의 의미를 드러내는 책을 쓸 것을 명령했다. 아널드와 테이버는 고무되었고, 코레시가 자신의 말을 지켜서 일곱 봉인에 대한 주해를 마친 후 평화적으로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성경 주절주절(Bible babble)”이라고 일컬었던 것에 지친 FBI는 이것도 또 하나의 지연 전술이라고 마찬가지로 확신하고 공격을 감행했다._184~185쪽: 9장 “테러의 모방” 中

우리는 가장 고귀한 가치들에 대해 말할 때 ‘최대의’, ‘절대적인’, ‘최종적인’, ‘궁극적인’과 같은 강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은 ‘성스러운’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신적인 것이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초월적인 것과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활동했던 깊이 있는 종교적 문화의 맥락에서 강한 감정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러한 종교적 용어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보존했다. 우리는 비종교적 맥락을 고려해서 ‘궁극적인’ 또는 ‘절대적인’과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프라바카란의 텍스트에서 모든 ‘성스러운’을 ‘궁극적인’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 용어 사용은 메시지를 급진화하는 그의 방식이다. _206쪽: 10장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中

IS는 프랑스의 시리아·이라크 공습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그 공습을 프랑스의 일반적인 ‘대(對)이슬람 전쟁’의 일부분으로 규정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말리에서의 프랑스의 군사 작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의 ‘예언자’에 대한 저주,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느끼는 굴욕이 다른 불만들로서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파리 공격은 프랑스의 반이슬람 정책 일반에 대한 복수로 여겨진다. 리비아의 알제리인 전사는 그 공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의 역사는 피로 물들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복수할 차례이다”. 프랑스인 범인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이(Isma&#235;l Omar Mostefa&#239;, 아부 라얀 알피란시 Abu Rayyan al-Firansi)는 “우리는 우리 자매와 형제들의 고통을 갚아줄 것이다. …… 너희들은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파리 공격은 그래서 IS가 외부의 공격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지킨다는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그 공격들은 IS가 단지 칼리프 국가 안에 사는 무슬림들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 움마의 수호자로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_236쪽: 12장 “야만의 의미” 中

음모론에 기반한 다른 추측들은 흔히 러시아와 미국의 역할을 연루시켰다. 3개월 전 키르기스스탄의 미국 대사관에 도착했던, 대사관 건축 자재라고 주장된 150톤의 ‘외교 우편물’에 대한 비밀스러운 논의들이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재개되었다. 어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혼란이 키예프에 있는 대사관이 유사한 비밀스런 ‘우편물’을 받고 난 후 시작되었다는 점과, 반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IS의 위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정치적 상황을 유리한 방식으로 불안정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다른 이들에 따르면, IS의 위협은 그 나라에서 군대 주둔을 두고 미국과 오래 경쟁해 온 러시아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 IS라는 골칫거리를 사용하는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강화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_264쪽: 14장 “현대 키르기스스탄에서 이슬람 국가(IS)의 위협 이해” 中

이런 유형의 서사시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위대한 일을 성취하고 비범한 여행을 하기 위해 싸우는 인물들의 복잡성이다. 다른 서사시 양식도 위대한 국가 정신과 영웅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치중한다. 그것은 위대한 여정을 포함하지만, 그 대신에 ‘타자’를 소리 없는 존재로 만든다. 곧, 인간보다는 고래와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고래와 같은 지위를. 타이비는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한 반응에서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아니다. 이건 말 그대로 ‘영웅이 악당을 잡는’ 영화이며, 청중들이 고문을 가하는 마야에게 감정 이입을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 우리는 정말로 관객들이 영화 끝부분에서 마야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녀가 헬리콥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아름다운 빨간 머릿결을 살랑거리며 왔다 갔다 할 때 두근거렸을 리가 없다고 믿는가? 그들은 그녀에게 망토를 두르게 하고 원더우먼 의상을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얼마나 교묘한지 보여준다.” _297쪽: 15장 “테러와 스크린” 中

자살 폭탄 테러에서 전술적 목적은 적을 죽이는 것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불신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박아 넣는 것이다”. 자신을 폭파시키는 폭탄 테러범의 극적인 죽음은 “무자헤딘은 삶보다는 죽음을 사랑한다”라는 것을 적에게 보여주는 공포스러운 스펙터클의 일부이다. 반대로 경찰에게 잔인하게 탄압받고 잠재적으로 죽임당하도록 자신을 설정하는 파룬궁 수련가는 스스로를 명백하게 무고한 희생자로 제시하는데, 외부 관찰자에게는 이것 역시 공포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영적 수준에서, 수련가들이 스스로 해(害)를 창조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영적인 ‘폭탄’은 경찰로부터 백색 물질(더)을 소진시키고, 수련가들의 흑색 물질(카르마)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경찰을 향해 ‘폭발시킨다’. 그래서 비전의 수준에서, (수련가 자신들의 관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파룬궁 구성원들이 경찰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게다가 개인적·영적 수준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동일한 수련가&#8209;순교자들이며, 반면 경찰들은 패배하고 있다. _320쪽: 16장 “영적 테러리즘으로서 파룬궁 순교 전술의 이해.” 中
 
  1장. 종교가 테러리즘을 유발하는가?(마크 주어겐스마이어)
2장. 종교, 폭력, 난센스 그리고 권력(윌리엄 캐버노)
3장. 자생 테러리즘 설명에서 종교 무시: 한 가지 비판(론 도슨)
4장. 종교, 과격화 그리고 테러리즘의 원인(톰 밀스, 데이비드 밀러)
5장. 전쟁, 혁명 그리고 테러리즘에서 헌신된 행위자의 역할(스콧 애트런)
6장. 지라르, 종말과 테러리즘에 대하여(에스펜 달)
7장. 합리적 선택과 종교적 테러리즘: 합리적 선택의 근거, 적용 그리고 미래 방향(스티븐 네메스)
8장. 희생 제의로서의 테러?: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한 (신)뒤르켐주의 접근 논의(로렌츠 그라이틀)
9장. 테러의 모방: 종교와 테러리즘의 연관에 대한 회고적 분석의 적용(제임스 루이스)
10장.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일라타밀족의 자결권 확립을 위한 비종교적·정치적·전투적 운동(페터르 스할크)
11장. 알카에다 폭력에서 종교의 역할(피터르 나닝하)
12장. 야만의 의미: 테러, 종교 그리고 이슬람 국가(IS)(피터르 나닝하)
13장. 샤를리는 어디에 있는가?: 2015년 1월 7일 이후 프랑스의 종교 폭력 담론(페르‑에릭 닐손)
14장. 현대 키르기스스탄에서 이슬람 국가(IS)의 위협 이해(메림 아이트쿨로바)
15장. 테러와 스크린: 선악 관계의 가상을 유지하기(크리스토퍼 하트니)
16장. 영적 테러리즘으로서 파룬궁 순교 전술의 이해(제임스 루이스, 니콜 다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