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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
하영선 지음
한울아카데미 / 2019-09-05 발행 / 신국판 / 양장 / 528면 / 43,000원
ISBN 978-89-460-7188-9 03340
분야 : 정치·국제관계
 
  ■ 한국인을 위한 국제정치학이 필요한 시대
■ 하영선 교수의 가장 한국적인 세계정치 강의

이 책은 한국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50년간의 지적 여정을 되돌아보며 서울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진행한 강의를 담은 것이다.
강의에서 하영선 교수는 ‘미움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정치에서 사랑과 구원의 세계정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반세기에 걸쳐 탐구한 결과물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세계정치의 큰 틀이 변화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변환의 시대를 맞은 오늘날까지 세계정치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국제정치이론의 주요한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더 나아가 빠르게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 세계정치질서의 본질을 짚어보면서, 그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을지 알아본다.


■ 어느 때보다 수준 높은 국제정치학이 필요한 시대
■ 한국 국제정치학의 거목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 세계정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강대국 간의 각축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에서 살아가는 탓에, 한국인에게 국제정치는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핵 문제와 일본과의 갈등이 더해진 오늘날, 그런 삶의 무게는 더욱더 무겁게 느껴진다. 미국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모른다 한들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을 자국의 외교나 일본, 중국의 대외 정책이 한국 시민의 삶에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위험 요소가 되곤 한다.

그런데도 국제정치학은 한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당장 일본과의 갈등에 대한 접근에서도 여론과 정책을 지배하는 것은 국제질서 속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는 국제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 사로잡혀 상대를 적대시하고 편을 가르는 민족주의적 관점이다. 그런 관점 자체가 반드시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놓인 복잡한 상황을 직시할 때 그것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강대국에 너무나 오래 짓눌린 채 살아온 탓일까, 아니면 하루하루 개개인의 삶이 팍팍했기 때문일까,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서 국제적 관점에 제약을 받아서였을까. 우리 주변국들의 시야는 자꾸 국경을 넘어 타국의 삶을 간섭하려 드는데, 우리의 시야는 한 세기 넘게 여전히 한반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상황에 대해 안팎의 전문가들은 책임 소재를 떠나 결국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싸워서 이길 힘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19세기 말, 20세기 초처럼 강대국 국제정치학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겨낼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도 많은 이가 되뇌는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자. 과연 우리의 선택지에 미움과 갈등, 대결과 저항만 있을 뿐인가. 여기에 오히려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품고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의 길로 이끌라고 말하는 국제정치학자가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너무 비현실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어쩌면 그래서 더) 멋진 말이지 않은가. 누구 집이 더 잘사니, 누가 더 잘 싸우니로 유치하게 다투던 친구들 사이에서 딱히 잘난 구석 없이도 왠지 모를 매력으로 인간관계 두루 좋던 어릴 적 한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친구는 싸움을 잘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건만, 이른바 일진들의 괴롭힘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이런 말을 한 국제정치학자는 다름 아니라 한국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거목 하영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이번에 출간한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한울엠플러스 펴냄)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책은 그가 50년에 걸친 국제정치학 연구 여정을 총정리하면서 지난 2016년에 서울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상대로 했던 강연을 글로 옮겨 엮은 것이다. 세계정치의 이론과 역사부터 세계무대 속 한국의 현실과 미래까지 그가 연구해 온 주제를 망라한다. 강의 내용에 더해, 그동안 그가 쓴 수백 편의 칼럼과 보고서, 강의록에서 24편을 골라 함께 실었으니, 500쪽 넘는 분량이 놀랍지 않다.

50년의 ‘지적 연애’를 결산하는 책의 제목이 ‘사랑의 세계정치’인 것은 그것이 그가 지난 반세기 동안 풀어내고자 애쓴 필생의 연구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1960년대 후반은 국제적으로 냉전이 정점에 이른 가운데 남북도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경제성장 드라이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가운데 대학가와 야당을 중심으로 3선 개헌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혼란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런 나라 안팎의 환경에서 힘없는 약소국과 그 민족의 삶에는 적응과 저항이라는 두 갈래 길만 놓여 있는 듯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하영선 교수는 “서로 아끼고 사랑할 가능성을 지닌 인간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경쟁하고 미워해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전쟁 상태를 겪게 되는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는 구원의 정치학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됐다. 그 질문에 답하고자 시작된 20대의 지적 고민은 결국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이 책은 50년간 이어진 그런 고민의 흔적과 이를 통해 빚어낸 결과물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강의는 1강 ‘사랑의 국제정치학’으로 시작해 10강 ‘꿈의 세계정치학’으로 마무리된다. 첫 강의의 주인공은 그로 하여금 사랑의 세계정치를 꿈꿀 수 있게 한 장 자크 루소다. 하영선 교수는 루소가 말한 자기애와 경쟁애의 인간상은 단순히 개인의 실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정치의 핵심 질문과 맞닿아 있다면서, 경쟁애로 타락한 인간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내 나라 사랑하기’와 관련한 자기애,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랑하기’와 관련한 동정의 감정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루소가 내린 답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이로써 얼핏 이상적으로만 들렸던 ‘사랑의 세계정치’의 개념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독자들이 먼저 감을 잡을 수 있게 한다.

하영선 교수는 워싱턴대학에서 조지 모델스키(George Modelski) 교수에게서 수학하면서 한반도의 핵확산 문제에 관한 국제정치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핵문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사랑의 세계정치’를 꿈꾼 그가 핵문제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사랑의 세계정치에 대한 고민은 역설적으로 무엇보다 미움의 세계정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세계질서에서 미움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하는 핵무기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어떻게 축소될 수 있을지를 국내에 관련 연구는 물론 일차자료조차 흔치 않던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하영선 교수는 북한은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지, 남한과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 남한의 핵무장론은 왜 비현실적인지와 같은 현실적 문제에 대해 그동안 그가 연구하고 고민했던 국제정치의 이론과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북미 대화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그가 내놓은 북핵 문제 전망과 해법에서는 이 분야 최고의 석학다운 통찰력이 묻어난다.

국제정치이론, 전쟁과 평화 연구, 한국의 외교정책론과 외교사 등 국제정치학의 주요 과목을 훑어가는 강의에서는 몇 권의 책으로 나올 법한(실제로 그가 수많은 책으로 냈던) 주제 하나하나를 설명해 나간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만나 한국전쟁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이승만과 김일성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분단체제의 동학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함께 읽으며 당시 조선 청년 지식인의 꿈과 좌절에 다가가 보고,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실제로 목숨이 오가던 시절로 돌아가 한국에서 사회과학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기 시작했는지도 알아본다. 또한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미국, 중국, 일본, 북한이 꾸는 꿈은 무엇인지, 그런 꿈들이 실현 가능한지를 따져보며, 그런 꿈에 둘러싸인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하영선 교수는 글보다 예술 작품이 자신의 국제정치학적 상상력을 훨씬 더 강하게 자극하기도 했다고 밝힌다. 그래서 마지막 강의에서는 열두 개의 예술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시간도 갖는다. 이런 예술 작품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향해야 할 가치다. 하영선 교수는 조선백자를 앞에 두고는 ‘매력국가’론을 설명하고, 다보탑을 올려다보면서 ‘탈근대국가의 복합 모델’을 이야기한다. 이중섭의 그림을 감상하며 ‘미움의 국제정치’를 고찰하고, 백남준의 작품을 통해 한반도가 처한 현실을 함께 그려본다. 고흐의 그림을 통해 국제정치의 현실과 이론의 조화를 꿈꿔보기도 하며, 사라세노의 설치작품에 올라타 ‘네트워크’를 몸으로 체험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열 번의 강의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함께 진행한 토크콘서트에서 하영선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민족주의를 포함해서 민족주의 갈등이 더 커지고 있어요. 그리고 인공지능이 초지능으로 발달하면 경쟁애적 민족주의와 연결돼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위험성이 있죠. 한일 그리고 한중의 싸움이 일국 중심의 민족주의로 커지면 결국 더 큰 손해를 겪는 것은 우리예요. 따라서 우리는 각생이 아니라 공생을 위해 공진해야 해요. 대국들은 각진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대국들은 공진해야 살 수 있으므로 복합적 대응이 필요해요. 닫힌 민족주의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그들을 열린 민족주의로 끌고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단순히 중화민족보다 더 큰 아시아태평양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도록 해야겠죠. 중국이 중심이고 한국, 일본, 아세안은 변방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여러분도 한국의 젊은이로서 중국의 젊은이들이 꿈을 더 크게 꾸도록 만들어야 해요. 앞선 강의에서 국제정치학회의 국제회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중국과 일본보다 작은 나라인 한국이 오히려 큰형 입장에 서서 모두 함께 정신을 차려, 미국이나 유럽과 싸울 게 아니라 21세기 세계질서를 복합적으로 재건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해요.” (485~486쪽)

세계정치에서 미움은 현실이고, 사랑은 이상이다. 그는 국제정치학자로서 현실을 통찰하는 것과 이상을 꿈꾸는 것 모두 놓칠 수 없는 과제였다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의 3분의 2 정도는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할애되고, 나머지 3분의 1은 그런 미래를 위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요컨대, 하영선 교수는 우리가 지난 세월 미움의 국제정치 속에서 겪은 고난을 직시하되, 또다시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예전처럼 더 닫아걸고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나아가 사랑의 세계정치를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질서의 변화를 바로 읽고, 우리의 능력과 자원을 최대한 개발·활용하면서, 싸워서 누르고 이기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함께하고픈 매력적인 존재로서 정체성을 다져,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주변국 모두와 더욱더 복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얼핏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맞닥뜨린 고통스러운 역사를 떠올려볼 때, 그리고 여전히 군사적·경제적으로 약자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그때와 무척 닮은 현재의 국내외 환경 속에서 그때와는 다른 성숙한 사회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가 더는 꿈이 아닌 현실로 가져와 세부적인 실현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할 지적이 아닐까.

국제정치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교양으로서 요구되는 시대에, 그렇다고 모두에게 국제정치학 전공 서적을 권할 수는 없을 터. 한국의 국제정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국제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친절한 말로 엮어 들려주는 이 책은, 분노와 자기연민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은 채 세계정치의 흐름을 읽고 우리가 놓인 길과 가야 할 길을 다시금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귀한 지침서라 할 만하다.
 
  강의를 시작하며
1강 사랑의 국제정치학
2강 세계질서와 한반도의 핵무기
3강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4강 한국 현대 외교정책론
5강 현대 국제정치이론
6강 복합세계정치학
7강 한국 외교사
8강 한국 근대 사회과학 개념사
9강 동아시아 질서 건축사
10강 꿈의 세계정치학
11강 토크콘서트
강의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