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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경제학: 인간의 경제를 향한 인류학적 상상력
마셜 살린스 지음, 박충환 옮김
한울아카데미 / 2014-10-15 발행 / 신국판 / 양장 / 480면 / 43,000원
ISBN 978-89-460-5730-2 93300
분야 : 경제·경영, 사회학
 
  ∥책 소개

한 뉴기니인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각 민족 사이에 생활양식의 격차와 불균형이 왜 생겨났는지 탐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책,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이렇게 반문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화물들을 만들 수 있어야만 합니까?”


▶ 그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카메라는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한국에서 1만 km 이상 떨어진 아마존 강 상류의 밀림까지도 거침없이 찾아 들어간다. 덕분에 우리는 안방이나 거실에 앉아서도 TV를 통해 오지에 사는 수렵채집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청자는 카메라가 비추는 수렵채집민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 낙후된 그들의 삶에 동정과 우월감을 느끼면서.
우리는 흔히 수렵채집민의 삶이 고달플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최소한의 여가도 없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구석기시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수렵채집민의 삶은 고달프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문명화’된 사람들이 ‘아마존 민속촌’에서 ‘최후의 전사 부족’을 연기하며 관광객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렵채집민의 삶은 정말로 그토록 음울한 것이었을까? 어느 인류학자의 묘사처럼 짐승들을 쫓아다니고 딸기밭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데 일생을 소비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았던 것일까?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는 적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수렵채집민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수렵채집민의 음울한 삶은 문명사회, 그리고 시장경제와 접하고 난 뒤의 삶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문명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이른바 ‘미개사회’를 마음대로 짓밟고 황폐화했다며 비난한 바 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즉 수렵채집민들이 아직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을 때 그들의 삶은 풍요로웠다. 생각해보라. 구석기 수준의 도구밖에 없는 수렵채집민이 부르주아적 욕망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될지.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자. 수렵채집민이 건강한 생존이라는 한정된 목표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활과 화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

풍요로움이란 규정하기에 따라 그 의미가 매우 달라진다.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 있고, 덜 원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 있다. 전자가 시장경제에서 이야기하는 풍요로움에 가깝다면, 후자는 수렵채집민의 삶에서 나타나는 풍요로움에 가깝다. ‘문명화된’ 관찰자들은 수렵채집민이 수중의 모든 물건을 즉각 소비해버리는 것을 보고 그 생각 없는 ‘낭비벽’을 개탄했지만, 수렵채집민은 희소성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힘겨운 노동의 원죄에서 벗어나 더욱 일관되게 풍요로울 수 있었다.
원함이 없으면 부족함도 없는 법이다. 수렵채집민은 경제적 가능성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수렵채집민은 그들의 주변에 널려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식량을 얻고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잉여나 여분을 가지는 일은 귀찮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수렵채집민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빈곤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수렵채집민은 자유로웠다.
실제로 『석기시대 경제학』에서 묘사하는 수렵채집민은 거의 일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시간은 길어야 하루 4~5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휴식과 수면으로 보낸다. 노동시간이 짧다고 해서 빈곤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현대인 못지않게 다양한 식단으로 충분한 열량을 섭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수렵채집민은 인근의 식량 자원이 고갈되면 식량을 찾아 다른 지역을 향해 떠난다. 우리에게는 고되게 보이는 이동이지만, 그들에게는 소풍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게으른 여행자’들이 도착한 새로운 지역은 식량을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제공해주었다. 게다가 수렵채집민의 인구는 자연이 마련해놓은 훌륭한 창고의 혜택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을 만큼 적절했다.
다시 말해 수렵채집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살고 있었다. 오늘날 흔히 접할 수 있는 민족지적 자료는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말미암아 오염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 왜곡된 시선을 통해 그들의 삶을 멋대로 오해하고 재단하고 있을 뿐이다.


▶ 수렵채집민 사회에서 호혜성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호혜성은 반드시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석기시대 경제학』에 의하면, 수렵채집민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호혜성이다. 호혜성은 항상 무엇 ‘사이’의 관계이다. 호혜성은 친족과 집단의 결속과 연대를 강화한다. 이는 오지브웨이 인디언 사이에서 자란 ‘야생 백인’ 존 태너가 남긴 기록이 증명한다. 식량 부족이 만연한 시기에 어쩌다가 곰 한 마리를 잡은 태너와 다른 사냥꾼은 “이 짐승의 살코기를 한 입도 먹지 않고 캠프로 가져와서 모든 천막에 골고루 분배해 주었다”. 큰 사슴 두 마리를 사냥한 다른 인디언이 고기를 캠프의 다른 가족들과 나누지 않고 몰래 태너와 둘이서만 나누자고 제안하자 그 사람보다 훌륭한 인디언이었던 태너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사냥을 나가 곰 네 마리를 잡아 배고픈 사람들에게 분배해 주었다.
그러나 호혜성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가구의 이해와 가구를 초월한 공동체적 이해가 충돌하곤 했다. “겨울에는 친척, 가을에는 아들”이라는 마오리 사회의 속담은 농번기인 겨울에는 먼 친척이었던 사람이 추수기인 가을이 되면 갑자기 아들처럼 행동한다는 뜻으로, 개인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동이 사회집단의 표면적 도덕성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호혜성’은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착취의 토착적 범주이기도 했다. 추장의 위세는 추장의 관대함에서 비롯되었다. 추장은 이방인이나 방문객, 추종자들을 상대로 아낌없이 부를 지출해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부는 애초에 추장이 공동체로부터 받았던 것의 일부를 공동체에 되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재화는 재분배되고 사회의 집단적 이익은 재창출되었다. 재분배가 호혜성의 중앙화된 형태라고 본다면, 호혜성이 지닌 모호함은 추장과 일반 주민 사이의 물질적 불균형을 은폐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 대안적 세계관을 모색하고 비전을 제시하다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인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경제가 ‘생계경제’를 대표한다고 보는 경제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즉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려 한다.
이 책은 경제인류학의 고전적 쟁점과 풍부하고 흥미로운 민족지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경제사, 사학 전공자들의 교재나 연구서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을 현재의 맥락으로 호출하면, 당대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경제 철학과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의미심장한 지적 토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빈곤, 불평등, 폭력과 전쟁, 환경문제의 극복을 고민하는 광범위한 독자에게 풍부한 실증적 자료와 중대한 지적 비전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신간 출간의의(출판사 서평)

▶ 인간을 위한 경제란 무엇인가? 진정한 풍요사회란 어떤 것인가?
주류 경제학을 향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다

도구는 인간 신체의 인위적인 확장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노동자의 노동이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공정을 보충한다. 오히려 기계의 공정이 노동자를 이용하는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화폐는 기괴한 자기 증식을 통해 ‘상품’으로 매매되고 있다. 전광판과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는 실체 없는 숫자로 이루어진 자본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실물경제를 위협하고 있고,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다. 과거에는 허황된 꿈으로 치부되었던 연금술이 오늘날 금융자본의 마술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없는 사회,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사회에 많은 이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주류 경제학이 ‘합리주의’나 ‘진화’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드리운 장막은 여전히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는 주류 경제학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원시사회의 경제는 정말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었을까?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분별한 경제개발이 초래하는 환경 파괴와 인간성 말살이라는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오히려 단순사회의 경제야말로 진정한 합리성과 효율성을 지닌 것은 아닐까?
 
  제1장 원초적 풍요사회
제2장 가족제 생산양식: 저생산의 구조
제3장 가족제 생산양식: 생산의 강화
제4장 선물의 영(靈)
제5장 원시교환의 사회학
제6장 교환가치와 원시교역의 외교수완
부록 A: 호혜성과 친족거리에 관한 기록
B: 호혜성과 친족등급에 관한 기록
C: 호혜성과 부에 관한 기록